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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짧지만 과정은 길다.

by 이미행복 2020. 6. 21.

결과는 짧지만 과정은 길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어렸을 때부터 뭐든 조금만 어려워지고 힘들어지면 관두곤 했다. 그만두는 일이 많은 건 끈기가 없는 탓일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단순히 끈기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해서 잘 되는 경우는 그래도 꽤 꾸준히 했던 것 같다. 내게는 좋아해서 계속하는 프로세스보다는 잘 하면 계속 하고 못 하면 바로 흥미를 잃고 그만두는 프로세스가 더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꼭 잘해야할 필요가 없는 ‘취미’ 같은 일에 대해서도 반드시 잘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피아노도 수영도 춤도 나보다 잘 하는 옆 사람과 비교하며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없을텐데도 조금이라도 성과가 지지부진하거나 잘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도망치곤 했다. 왜 그랬을까?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수행을 할 때 과정을 중시하는지 아니면 결과를 중시하는지, 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에 따라 목표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성과목표(performance goal)로 수행의 결과와 실패하지 않는 것에 큰 포커스를 두는 것이다. 


성과목표가 강한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많이 배우고 성장하는지 보다 일단 ‘실패만 하지 않는 것’이 큰 목표가 된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적어도 ‘겉보기’에는 괜찮은 성과를 내는 것을 목표로 삼기도 한다. 실제론 별로 아는 게 없는 속 빈 강정 같은 상태여도 ‘치팅’을 해서라도 자신이 실패자가 아님을 보이고 싶어한다. 또한 사실 하나도 즐겁지 않더라도 어떤 일이 다른 사람들 보기에 좋아 보인다면 계속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안 좋은 모습이라도 보이게 되면 금방 모든 의미를 잃고 그만두고 싶어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다른 하나는 숙련목표(mastery goal)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또 당장의 결과가 어떻든 그 일을 통해 내가 즐거울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더 중요한 경우이다. 숙련목표를 강하게 보이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사람들 앞에서 실수를 해도 크게 개의치 않고 즐거움을 느끼는 한 그 일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의 경우 다양한 수행에 있어 전반적으로 성과목표가 더 큰 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못한다고 해서 삶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취미 생활에서도 그 과정을 순수하게 즐거워하지 못하고 ‘결과’를 크게 신경쓰고 말았다. 엄청 하고 싶었던 일도 조금만 잘 안 되거나 또 부정적인 코멘트를 듣거나 하면 바로 모든 흥미를 잃곤 했다. 


‘뭐든지 잘 해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결과지향적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탓에 조금만 못하면 바로 흥미를 잃고 포기함으로써 못함을 원천봉쇄했다. 그냥 생각 없이 즐길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순수하게 좋아해서 하는, 하기만 하면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해질 수 있는 활동들을 많이 만들지 못했다. 


실제로 숙련목표가 강한 사람들과 달리, 성과목표가 강한 사람들은 단기적인 성취에는 강한 모습을 보이나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은 잘 만들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일례로 어떤 과목에 있어 숙련목표가 강한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성적이 더 좋진 않았지만 해당 과목에 대한 흥미를 더 크게 느끼고 다음 학기에도 관련 수업을 수강할 의향을 보였다. 반면 성과목표가 강한 학생들은 성적은 더 좋았는데 그 과목에 필요 이상의 투자를 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장기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찾고 거기에 마음을 다 바쳐 깊은 전문성을 갖게 되는 사람은 성과목표보다 숙련목표를 크게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숙련목표가 강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성과가 나쁘다고 너가 그래서 안 된다며  자신을 비난해버릇하는 모습도 비교적 덜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결과와 상관없이 과정을 통해 즐거움을 느낄 줄 알고, 자신의 노력과 그 과정에서의 성장을 인식하며 뿌듯함을 느낄 줄 알기 때문이다. 


결과는 짧지만 과정은 길다. 삶은 결국 시간이고 이 시간의 대부분은 결과가 나오는 순간이 아니라 거기로 가는 과정들이다. 따라서 매 순간 나름의 기쁨을 추수할 줄 아는 사람들이 오직 결과의 좋음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보다 대체로 더 행복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만약 그럭저럭 잘 하는 일들은 많은데 딱히 좋아하는 일은 없다면, 성과에만 과하게 초점을 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나의 즐거움, 배움과 성장에도 관심을 주자. 

 

※관련기사

-Eccles, J. S., & Wigfield, A. (2002). Motivational beliefs, values, and goals. Annual Review of Psychology, 53, 109-132.
-Harackiewicz, J. M., Barron, K. E., Tauer, J. M., Carter, S. M., & Elliot, A. J. (2000). Short-term and long-term consequences of achievement goals: Predicting interest and performance over time. Journal of Educational Psychology, 92, 316-330.
-Neff, K., Hsieh, Y., & Dejitterat, K. (2005). Self-compassion, achievement goals, and coping with academic failure. Self and Identity, 4, 263–287.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