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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ON

René Magritte

by 이미행복 2020. 6. 24.

英.플랑드르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세계 Ⅳ[1956~1967] - René Magritte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세계 Ⅳ[1956~1967] - René Magritte 


[Belgian surrealist Painter . Surrealism : 1898~1967] 

  

Rene Magritte는 벨기에의 작은 마을 레시느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가족이 여러번 이사하였기 때문에  그의 어린 시절을 여러 다른 장소에서 보냈다.  아버지는 양복점을 경영하였고, 결혼 전에 양장점과 제모점을 경영하였던 어머니는 1912년 샤틀레의 샹부르에서 투신 자살하였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영향은 20년대 후반의 몇몇 그림에서 느껴지는데 - 중심의 역사(1927), 사랑하는 사람들(1928) - 이 그림들에 나타나는 천으로 덮혀진 인물들의 머리는 강으로 인양되었을 때 셔츠로 얼굴이 덮혀 있었던 어머니 시신의 이미지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의 가족은 다음해 샤를르루와로 이주하였으며  그 도시에서 조제트 베르제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1920년까지 만나지 못하다가 1922년 다시 만나 결혼한 후에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았다.

 

어린 시절 마그리트는 여름 햇빛이 한창일 때 친구들과 함께 공동묘지에 붙어 있는 어두운 납골당을 자주 가곤 했다고 회상한다. 납골당 출구 가까이에 있는 포플러 나무에 투영된 화가의 이미지는 막연하게나마 회화의 계시적인 힘을 가진 마술적 요소와 같다라는 생각을 떠오르게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로서의 출발은 1916년에 들어간 브뤼셀의 미술 학교에서 시작되었다.  


비록 얼마 후 이탈리아 미래파 화가들의 작품, 특히 키리코의 작품으로부터 영향을 지배적으로 받게 되나 그 시대의 다른 여러 화가들처럼 처음에는 인상주의의 영향 아래에서 화가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20년대 초반 마그리트는 피터스 라크로와 가(家)를 위해 색종이 디자인을 하고 광고 그림을 그리면서 생계를 이어 나갔다.  동시에 그와 함께 벨기에 초현실주의를 현성하게 되는 여러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도 가지게 된다.  피에르 브르조아, E.L.T. 메젠느, 카미유 괴망스, 마르셀 르콩트, 폴 누제, 앙드레 수리 등이 그들이다.

 

20년대 중반 그는 대상의 외향을 아무 꾸밈없이 차갑게 재현하기 위해서 전통회화기법과 색상의 대비를 미련없이 포기하였다.  원칙적인 시각효과로서 대상들 사이에 나타나는 관계는 앞으로 제작될 그의 작품에서 기본적인 역할을 하였고 그의 전 창작 시기동안 계속하여 나타났다.  


1927년 브뤼셀의 엘 센타우르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이 때 이미 이러한 그의 작품관이 정립되어 그림에 나타난다.  마그리트와 그의 부인은 3년 동안 파리 근교의 페로 쉬르 마른느에 정착하여 살았는데 여기에서 파리에 화랑을 연 괴망스의 중재로 브르통과 초현실주의 화가드르과 접촉을 시작하였다.  마그리트는 이들과 함께 - 막스 에른스트, 장아프로, 미로, 달리 - 1928년 그의 친구이자 가까운 유대관계를 지속해 온 괴망스의 화랑에서 주최된 '초현실주의 전시회'에 참여하였다.  


그는 초현실주의의 모든 활동에 가담하였고 "초현실주의 혁명"의 출간에도 힘썼으며, 이 잡지의 마지막 호에 자신의 회화적 이상을 확실하게 선언한 '단어와 이미지'라는 글을 발표하였다.

 

비록 뜨겁지도 소원하지도 않은 관계였지만 마그리트는 죽을 때까지 브르통과 초현실주의 화가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그리트는 자신의 회화관에 충실하여 그의 회화적 독자성을 지켜갔다.  회화적 일관성이 너무나 독보적이어서 그의 작품을 통해 시대 구분이나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1930년에는 다시 브뤼셀에 정착하였으나 파리의 그룹과는 계속적으로 접촉하여 1934년 "초현실주의는 무엇인가"라는 브르통의 책 표지에 '폭력'이라는 작품을 실었으며, 또 1937년 '미나타우로' 10호의 타이틀 표지에 작품을 실었다.  또한 여러 다른 국제 초현실주의 전시에도 참여하여 뉴욕에서 그의 첫 전시를 개최한다.

 

   제 2차 세계대전은 상승일로의 화가에게 잃어 버린 시간과 같았다.  전쟁이 끝날 부렵 그는 벨기에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30년대에 두 번이나 이 단체에 참가하였으나 예술적 문제에 있어서의 반동적인 입장은 그로 하여금 곧 탈당하게 만들었다.  그는 계속하여 벨기에의 옛 초현실주의 동료인, 노지 스쿠테네르와 마리엔과 같이 공동 작업하여 현실 참여적인 초현실주의자로서의 면모를 회복하였다.

 

   1943년과 1948년에 그의 작품에 있어서 기존 작품과는 단절을 보이는 두 시기를 맞게 된다.  그 하나는 르누아르 시기이며 또 하나는 바세 또는 투박한 사대라 불리우는 시기이다.  첫 번째 시기에는 르누아르의 마지막 시기에 그려진 여성 누드의 양식에 가까운 회화적이고 붓자국이 잘 드러나는 양식의 몇 작품을 완성하였다.  


두 번째 시기는 매끄럽고 차가운 관습적인 특성을 무시하면서 큰 붓질로써 기본적인 형태를 그린 25점의 작품이 이 시기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작품들은 새로운 양식으로 발전되지 않고, 20년대 후반부터 발표되었던 그만의 양식으로 곧 되돌아온다.

 

1950년대에는 브뤼셀의 왕립 극장 회랑의 천장이나 - 1952년 파울 델보와 함께 그의 그림을 전시한 장소이기도 하다 - 크노케 르 쥬트의 카지노 응접실을 장식하는 등 여러 벽화와 장식 제작이 눈에 띈다.  1954년 브뤼셀의 "미술 궁전"에서의 대회고전은 그를 벨기에 최고의 현대미술가로 만들어 주었다.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면서 잡지 제작에도 협력하였고 1957년부터 조제트와 그의 친구들이 출연하는 몇몇 단편 영화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1967년 사망 직전까지 뉴욕의 현대 미술관의 대회고전을 포함한 많은 국제적인 전시를 개최하였다.  그의 작품에서 자주 반복되는 이미지는 모든 현대 미술의 뛰어난 특징들 사이에서 가장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마그리트와 초현실주의


파리의 초현실주의자들의 대열에 참여한지 2년 후인 1929년 12월에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자들의 기관지로 그들의 표현의 자유를 가능케 해주었던 "초현실주의 혁명"에 초현실주의에 대한 그의 주요 공헌이라 할 만한 글을 발표하였다.  이 잡지에 발표한 "단어와 이미지"라는 글에서는 18개의 작은 컷으로 이루어진 경구적인 짧은 내용을 언급한 네모난 구획의 작품을 다루었다.


 여기에서 "대상은 그 이름이나 이미지가 가지는 똑같은 기능을 결코 완성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馬)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말과 똑같이 닮은 모습이 그림 안에 그려져 있고 한 사람이 '말(馬)'이라는 단어를 말하고 있다.  

"대상으로서의 말은 그 이름과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사물을 잘 납득시킬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 말 그림에 이어 나뭇잎의 그림에 '대포'라는 단어가 연속되고 있다.  '태양'이라고 말하고 있는 한 여자 그림 아래 "단어는 현실에서 그 대상이 대체될 수 있다"라는 문장의 주해가 달려있다.

 

 이런 간력한 선언은 르네 마그리트의 모든 작품의 특성에 대하여 정확한 개념을 부여하고 있다.  마그리트의 작품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확실하게 믿고 있는 대상들과 그것들의 이름과 의미와 기능에 있어서, 그 관계는 시리제로 우리가 믿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미약하다는 인식 위에 기초하고 있다.  

마그리트가 그의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본질적인 가치를 가진 현실의 여러 다른 조직체를 시적인 은유의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색, 질감, 또는 그림자와 빛의 대비와 같은 것이 본질적인 가치로 인식되던 전통회화와는 구별되는 개념적 회화이다.  

 마그리트의 목적은 정신의 자유를 위한 필요조건으로, 현실의 신성하고 체계 잡힌 질서를 반박하는 계시적이고 비평적인 예술 창작에 있다. 비록 다른 초현실주이 작가들의 시도와는 뚜렸이 구별되는 차이점이 있으나 초현실주의 운동과 동일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마그리트는 1927년 파리에서 앙드레 브르통을 만나기 이전부터 초현실주의 경향의 작품활동을 하였다.  이 벨기에 화가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작품들은 20년대 초에 알게 된 키리코의 작품이었다.  

파리 초현실주의 예술의 중심은 무엇보다도 문필가인 브르통, 아라공, 에르와르, 아르쿠르에 의하여 구성되어졌고 그 중심적 내용은 꿈과 욕망의 세계를 해방시킴으로써 예술과 삶을 새롭게 하는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자동기술법(automatism)"을 채택하였다.  

초현실주의 회화는 시인들에 의해서 여러 실험을 통하여 개척된 길을 따라갔다.  가장 힘든 것은 자동기술법적 과정들이 조형 예술가들에게는 가능성의 한계로 드러난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많은 화가들이 이 과정을 포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화가들은 그들의 회화작업의 중요한 원천으로서 프로이드적 무의식의 세계를 충실히 반영하였다.  

그러나 마그리트는 다른 초현실주의자들과는 달리 꿈과 욕망이 그의 회화의 기원이 아니었으며 일상 현실에 대한 내용의 역전을 통해 낯설은 현실을 지성적으로 모색했다.  아마 이 때문에 그와 브르통 - 다시 말해서 교조적인 초현실주의 - 과의 관계는 항상 미약했으며 거리감을 두었으나 한번도 완전한 결별에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마그리트의 회화는 친숙한 대상들과 재현된 대상들 사이에 비정상적인 관계를 이룩하면서, 객관적인 방법에 의한 세부 묘사에 따라 재현된다.  이런 선회는 단순한 탈문맥성에서 출발 가능한 다양한 메커니즘으로부터(공 모양, 또는 나무 손잡이로 형성된 숲, 하늘을 날아다니는 종) 갈등적인 연상방법으로(가슴은 눈으로, 성기는 입으로 형성된 얼굴이자 동시에 누드 토르소), 또는 모순적인 방법에 의해(열려진 문 위에 걸려 있는 구름, 재현된 실제 풍경과 그려진 풍경과의 혼돈) 창출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마그리트는 마치 광고언어처럼인접성과 유사성에 의해 대상들 사이에 세워진 연상작용에서 모든 가능한 조자가을 뽑아 내어 이개념적 조작을 점점 더 조탁하고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근접성에 의하거나 또는 대립에 의한 사물들이 가지는 관계성을 지속하면서, 사과나 태양과 같은 둥근 모양으로 사람의 머리를 대신하게 하거나, 나뭇가지처럼 나뭇잎의 잎맥 위에 새들을 앉힌다든지 하여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엉뚱한 결합을 통해 다른 사물로 대상들을 변형시킨다.

 

 마그리트의 이미지는 마치 은유와 같은 기능을 한다.  그러므로 이은유는 시적인 본성을 지진다.  이미지들은 가끔 불안정하지만 달리, 에른스트와 다른 초현실주의자의 이미지처럼 무섭게 소름끼치는 것은 아니다.  마그리트의 회화는 어떠한 비극적 파토스도 현실과 신비 사이의 경계 없는 연속에 의해 와해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그가 생계를 꾸려 나가기 위해 제작한 광고 그림에서처럼 방관자로서 느끼는 중성적인 형태로 재현되어져 그림 속에 그려진 대상의 조형적인 표현력의 부재와 관련된다.  이러한 선택은 마그리트 회화의 개념적 특성을 더욱 강화시키며 그림에 나타나는 대상에 대한 무관심성은 마르셀 뒤샹의 레디 메이드와 마그리트의 작품에서 보이는 명백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두 작가의 성격을 근접시키고 있다.


   그의 그림에 나타나는 차가운 회색조의 단조로움 안에는 사물들과 우리 사이의 연게성의 존재와 부재에 대한 모든 암시의 힘이 뿌리내리고 있는데, 이는 20세기 예술에 있어서 명백하게 나타나는 회화적 사조보다 개념적 사조에 더욱 가까이 접근하고 있는 지성적인 전략 가운데 하나이다.

 

 

Anne-Marie Crowet. 1856. oil on canvas.

 


Sixteenth of September. 1956. oil on canvas.50 X 60 cm.

 


The poet recompensed. 1956. oil on canvas.

september . 1957.

 

  

Territory. 1957. oil on canvas.

 


The Prepared Bouquet​. 1957.  oil on canvas. 130.5 X 163 cm. Private Collection

 


Clear ideas. 1958. oil on canvas.

 


Harry Torczyner (Justice has been done). 1958. oil on canvas.

고대 호미관 의상으르 입은 인물은 해리 토르치너이다.  그는 변호사이자 마그리트의 친구였고 마그리트 작품의 연구자이자 소장가였다.  머리 위에 있는 기구는 이 인물이 여행하고 있음으로 암시하고 있다​


 


Hegel's Holiday. 1959. oil on canvas. 50 X 61 cm. Private Collection

  

The fountain of youth. 1958. oil on canvas.

  

The golden legend. 1958. oil on canvas. 130 X 97 cm. Private Collection

 


The Battle of the Argonne. 1959. oil on canvas. 61 X 50 cm.

 


The Castle of the Pyrenees. 1959. oil on canvas. 145 X 200 cm.

Israel Museum, Jerusalem, Israel

르네 마그리트의 회화에서 사물은 일반의 상식과 기대를 저버리는 방식으로 전개되곤 한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대상이 결합되어 나타나거나, 사물이 그 고유의 성질을 상실한 채 묘사되기도 한다. 한편 자연 법칙을 천연덕스레 거스른 초자연적 현상도 왕왕 그려지는데, <피레네의 성>이 그 경우다. 요새 모양의 성이 육중한 바위 정상에 솟아있고, 그 바위는 해변 위로 중력 저항 없이 마치 UFO 모선처럼 떠있다.

이 작품의 제목은 실현될 수 없는 백일몽을 뜻하는 프랑스식 관용어, ‘허공 위의 성곽’을 비틀어 쓴 것이다. 자연 법칙을 극적인 방식으로 넘어서기 위해 그는 거대한 바위를 등장시켰다. 돌덩이를 자주 등장시킨 1950년대를 일컬어 특별히 마그리트의 ‘석기 시대’라 이르기도 한다.

특히 <피레네의 성>이 제작된 1958년부터 1959년 무렵에는 볼륨감을 자랑하는 웅장한 바위가 화면에 빈번히 나타난다. <아르곤의 전투>(1959), <분명한 발상>(1958) 등이 이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모두 하늘 위에 붕 떠있는 바위를 형상화했다. 예술가이면서 미술 저술가인 수지 개블릭은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관찰되는 중력 저항 현상을 두고 뉴턴 물리학의 절대적 시공간 이론을 전복시킨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견지에서 사물을 바라본 것이라 풀이한다.

쉽게 말하면 상대성 이론은 이제껏 예측 가능하던 시공에 대한 관점을 소멸시켰고, 그 이론이 발표된 시대를 살던 마그리트가 시공간의 상대성을 이미지화했으리라는 해석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심층 해석보다 그림에서 관찰되는 초자연성, 중세 건축 양식의 성곽, 유령이 출몰할 것만 같은 분위기 등의 요소는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의 고딕 소설에서 받은 영향을 기괴함의 시원으로 파악하는 해석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피레네의 성 [Le chateau des Pyrenees]

 


The flash. 1959. oil on canvas.

  

The glass key. oil on canvas. 129.5 X 162 cm. Menil Collection, Houston, Texas, USA

 


The month of the grape harvest. 1959. oil on canvas.160 X 130 cm. Private Collection



The voice of blood. 1959. lithography on paper.  49.2 X 66 cm

 Museum Moderner Kunst, Stiftung Ludwig Wien, Austria


 


Force of habit. 1960. oil on canvas. 50 X 61 cm.  Private Collection

아름다운 세계,  1960


마그리트는 이 작품과 같은 해에 제작한 '라 지오콘다'와 매우 유사한 방법으로 화면 위에 덧붙여진 드스한 장면을 그림 속에서 만들어내고 있다.  세 개의 연속된 커튼 중 하나는 구름낀 하늘을 반사하고 있는데, 풍경을 경계지우면서 깊이감을 나타내고 있다.  풍경의 내용과 커튼 주위를 둘러싼 창문에 해당하는 부분들이 혼돈된 채 이 그림에 나타난다.


 


The anger of gods. 1960. oil on canvas. 50 ㅌ 61 츠.

  

The heartstrings. 1960. oil on canvas. 146 X 114 cm. Private Collection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앞에 선 관람객이 당혹감을 느끼는 이유는 캔버스에 등장하는 사물이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캔버스에 등장하는 대상은 유리잔과 구름, 그리고 산과 강이 있는 풍경이다. 이 모든 요소는 누구나 쉽게 접하고, 느끼며,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이와 같이 조합되는 순간, 각 사물이 어떻게 관계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일어 당혹감을 느끼는 것이다. 게다가 구름이 얹혀진 유리잔은 현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것으로 일종의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소인국 풍경에 등장한 거인국 사물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작품 앞에서 당혹감을 느끼는 이유는 유리잔의 크기와는 상관없다. 구름만한 유리잔을 만드는 것은 물리적으로 아예 불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유리잔이 있어야 할 그 장소가 구름의 밑이기 때문에 당혹감이 느껴진다. 그러기에 익숙했던 유리잔이 정말 유리잔일까 하는 의문마저 든다. 낯설다.

이처럼 어떤 사물을 본래의 위치에서 떼어내 다른 맥락이나 상황에 놓아 충격 효과를 내는 것을 데페이즈망(dépaysement) 기법이라고 한다.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인 시인 로트레아몽이 “재봉틀과 우산이 병원 해부대 위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는 아름다움”이란 표현을 썼는데 이는 ‘낯설게 하기’가 가지는 심리적 요동상태를 가장 적절하게 보여준다.

즉 낯익은 재봉틀이나 우산이 병원 해부대에 놓여있는 상황도 실제 가능하긴 하지만 막상 그것이 그 위에 놓여 있을 때 얼마나 황당함을 느끼겠는가? 마찬가지로 <심금>의 유리잔이 부엌이나 식당의 테이블 혹은 식기를 모아두는 장소가 아닌 평온한 전원의 구름 밑에서 발견되었을 때 누구나 정상적인(?) 상황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바로 이때 초현실을 경험하게 된다. 꿈속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 관람객의 무의식이 자극 받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심금 [La corde sensible]

 

 

 


The Postcard. 1960. oil on canvas.Mayor Gallery, London, UK


 

The presence of spirit. 1960. oil on canvas.


표절, 1960.


무언가를 믿으라고 할 때, 그 기저에는 얼마나 맹목적인 순종이 강요되고 있는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오류와 의의를 묵살하고 있을까? 나의 의식은 전적으로 나에게서 기인하는 것인가? 그것은 진정 어떠한 권력에 의해 강요되거나 이념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내적 정신에서 발아한 것인가?

아니 순수한 정신이라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정신이라는 것이 신체를 떠나 자유로울 수 없는데, 내 정신은 내 몸이 속한 이 사회의 이데올로기와 문화, 가치를 내포한 시대정신과 얼마만큼 분리될 수 있단 말인가? 의식은 그렇다 치고 감각은 또 어떠한가? 감각만큼 우리를 속이려 드는 것도 없다.

마그리트가 작품으로 던지고자 한 메시지는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은 '진실'이 어쩌면 자의반 타의반으로 빚어진 '착각'의 오류일 수 있으니 한 번쯤 모든 것을 의심을 해보라는 것이 아닐까?


내게 있어 세상은 상식에 대한 도전이다.
For me the world is a defiance of common sense.

-르네 마그리트


 


Portrait of Stephy Langui. 1961 . oil on canvas.

결혼한 사제,  1961


마그리트는 적어도 이 작품이 제작되기 10년 전부터 이 작품과 같은 주제의 다른 변형된 작품을 완성하였다.  

이 작품은 바비 다우레빌리에 의해 쓰여진 이야기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는데 이야기 속에서는 결혼한 사제와 그의 딸이 비극적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가면은 사과를 의인화시키고 있는데 다른 작품에서는 사과가 두 개로 표현되어 있다.  이 사과의 제시는 제목을 암시하면서 은연중에 불온한 성격을 시사하고 있다.

 


The mysterious barricades. 1961 . oil on canvas.

​폭포 1961.



Le chant d'amour. 1962.Gouache sur papier. 26.7 X 35.5 cm.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대부분 매우 익숙하고 낯익은 것들이다. <사랑의 노래>에 등장하는 사과를 비롯, 유리잔, 구름, 장미, 악기, 우산, 배 등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대상들은 마그리트의 캔버스에 등장하는 순간 매우 낯선 사물로 변한다. 이를 위해 마그리트는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이 작품처럼 <사랑의 노래>처럼 작은 사물을 거대하게 표현하는 것도 그 방법 중 하나다.

이 거대한 사과를 더욱 이상하게 만드는 장치는 바로 뒤편의 배경이다. 평범한 바닷가를 배경으로 쌓아 올린 사과는 도무지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으로 보이게 한다. 그러기에 이 작품 앞에 선 관람객은 친근한 사물을 앞에 두고 생소함을 경험하게 된다. 마그리트의 작품은 이렇게 익숙함을 낯섦으로 느끼게 하는 몇 가지 방법을 취하고 있다.

 거대한 사과나 방안을 꽉 채운 장미와 같이 세부를 확대하거나, 머리는 새이지만 몸체와 외관은 잎 모양을 하거나(<공포의 친구>(1942)), 발가락 모양의 신발이나(<붉은 모델>(1935)), 유방을 가진 옷(<부인의 내실의 철학>(1947)), 풍경 내의 다른 풍경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되면 표현된 대상은 원래 의미나 기능이 상실된 새로운 대상으로 다가가는 경이가 발생한다. 이와 같은 마그리트의 다양한 실험은 의심없이 지속되어온 사물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건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작품에 등장하는 사물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기에 관람객의 당혹감은 더욱 배가된다.

1967년 생을 마감한 마그리트의 말년작인 이 <사랑의 노래>는 과슈(gouache)라는 기법으로 그려졌다. 과슈는 재료의 특성상 투명한 느낌과 불투명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으며 이 기법을 이용한 작품은 선명한 색감을 가진다. 단 색을 혼합하면 탁한 느낌이 생기기 때문에 주로 단색으로 사용한다. <사랑의 노래>은 이러한 과슈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각 사과의 왼쪽 위 하이라이트를 표현은 백색 물감을 칠했는데 이 또한 과슈 기법의 특징을 나타낸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랑의 노래 [Le chant d'amour]


     Le tombeau des lutteurs. 1960. oil on canvas.  89  x 116  cm.  Private collection. 

르네 마그리트는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 이래 초현실주의를 표방해 온 예술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자랑하는 벨기에 출신 화가다. 사실적 재현을 궁극의 목표로 설정해 온 정통 회화의 오랜 인습을 거부한 20세기 초 추상화의 혁명으로, 회화는 양극화한 노선으로 갈라졌다.추상화의 등장은 결과적으로 현대 회화의 감상과 논의를 극소수 엘리트 집단의 고급 취미로 한정하고 말았다.

사실적 회화는 낡은 것으로 치부되었는데, 이때 마그리트의 목표는 새로운 구상 회화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추상 회화의 급부상으로 회화적 재현이 위기를 맞자, 사실적 재현은 유지하되 대상을 단순히 캔버스에 옮겨놓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제3의 의미를 표상하도록 했다. 그 결과 마그리트는 그리스계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의 뒤를 이어 형이상학적 회화를 집대성한다.

<레슬러의 무덤>은 방 하나의 내부를 꽉 채운 붉은 장미 한 송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황당한 설정이 이 작품에서 처음은 아니다. 이 작품과 거의 유사한 구도에 방 안 가득 연둣빛 사과를 채운 <리스닝 룸>이 앞서 두 차례(1952/1958) 제작된 바 있다.

방 안을 가득 채울 수 있는 한 송이 장미꽃이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이 뜻밖의 상황 앞에 대다수 감상자는 그림 이면에 숨은 상징이 있으리라 추측한다. 그런 이유로 마그리트의 작품 세계는 상징주의자의 영향 아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품의 제목인 <레슬러의 무덤>과 하나도 일치하지 않는 재현 대상(장미와 실내)이 관객들의 인습적 기대치도 배반한다.

마그리트가 편지에서 적은 것처럼, 사물을 평범하지 않게 보여주는 방법에 관해 그는 고민했다. 때문에 투사나 무덤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이 거대한 장미꽃 그림의 목적은 관람자의 오랜 인습에 순수한 시각적 충격을 던져주는 데 있었을지도 모른다.           [네이버 지식백과] 레슬러의 무덤 [Le tombeau des lutteurs]


 


High Society. 1962. oil on canvas.

  

Homage to Alphonse Allais. 1962.  gouache on paper.

 


Representation. 1962. oil on canvas.


the domain of arnheim. 1962


 


The domain of Arnheim. 1962.  gouache on  paper. 27 x 35 cm .

Musée Royaux des Beaux-Arts, Brussels, Belgium


 자연의 은총,  1962


마그리트의 그림에서는 새, 나무, 그리고 나뭇잎들이 항상 관련되어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 새들은 나뭇잎으로 변형되었고 넓은 대양에 떠 있는 상상의 섬과 가지가 무성한 나뭇잎에 신비적 성격을 부여하고 있다. 


 


The Nightingale. 1952. oil on canvas. 89 X 116 cm. Private Collection



The philosophy in the bedroom. 1962. oil on canvas.


 


The spirit of adventure. 1962. oil on canvas.


wasted effort. 1962.

이 작품에 대하여 마그리트는 "에드가 알란 포우가 무척 좋아할 예술까적 상상력을 현실화 하였다."라고 말하였다.  마그리트의 말에 의하면, 산은 "두날개를 펼친 새의 형태 안에서 정확한 형태를 발견하고 있다."  

전경에 보이는 충문 난간 위에 있는 새둥지와 그안의 알들과의 관게에서 산의 변이가 분명해진다.  감상자로 하여금 마치 밖을 내다보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환상적인 창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그림들은 마그리트의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보이는 주제이다.


 


Forest of Paimpont. 1963. oil on canvas.


The big family. 1963, oil on canvas. 100 X 81 cm. 우스노미야 미술관


창공을 나는 새? 새 모양의 창공? 앙리 마쇼는 <위대한 가족>을 보고 “넓은 하늘 아래 하늘을 가로질러 나는 새”라고 말했다. 새와 하늘은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보통 새는 하늘을 나니까. 그러나 좀더 생각해보면 이 둘은 엄밀히 어떤 관계도 맺고 있지 않다. 새는 새일 뿐이고 하늘은 하늘일 뿐이니깐. 이 작품에서 새는 존재하는 듯,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관람객은 으레 새를 떠올린다.

이처럼 부재하는 것(새)이 실재한다(새 모양의 하늘)는 생각은 우리의 습관과도 같은 인식의 태도에서 연유한다. 르네 마그리트는 이 작품을 통해 하나의 사물이 두 개의 사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인식 태도에 의문을 던진다. 이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마그리트는 교묘하게도 아주 일상적인 사물을 제시한다.

 그렇기에 관람자는 감각기관을 이용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인식하여 ‘참’이라고 믿었던 일련의 행위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얻는다. 이처럼 마그리트는 어떤 존재든 고정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모든 이미지는 역동성을 가진다고 보았고 그것을 캔버스에 표현하려 했다. 그래서 내부와 외부가 함께 존재하는 이중적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나의 사물에 잠재하는 또 다른 성질, 즉 이중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할 수 있는 점은 하늘을 보는 행위와 새를 보는 행위가 동시에 캔버스에서 일어난다. 이렇게 되면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일어나야 할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게 되어 시간의 절대성이 희미해지는 효과도 낳는다. 이는 바다를 배로 표현한 작품(<유혹자>)이나 꽃다발 속의 풀밭을 그린 작품(<표절>)에서 느끼는 효과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위대한 가족 [La grande famille]


The great table. 1963,



The infinite recognition. 1963. 


The looking glass. 1963. ​oil on canvas. 115 x 76 cm .  Menil Collection, Houston, Texas, USA


The natural graces. 1963. oil on canvas. 40 X 55 cm. Private Collection



The search for truth. 1963.



예외,  1963



A friend of order. 1964.

Chorus of the sphinx. 1964. oil on canvas.


Fine realities. 1964. oil on canvas.


이 그림에서 사과와 테이블 사이의 관계는 비례나 그 상대적인 위치, 바다 또는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공기중에 떠 있는 듯한 장소 설정등에서 완전히 도치되어 나타난다.  식탁 위에 먹을 수 있는 과일로서의 사과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은 위와 같은 그림의 표현을 통하여 엉뚱하고 파괴적인 역전을 이하게 된다.

Gioconda. 1964. oil on canvas. 86.5 X 92.2 cm.

 


Man in a Bowler Hat. 1964.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The Son of Man. 1964. oil on canvas. 89 X 116 cm. Private Collection

마그리트는 두 개의 다른 대상들, 그러나 형태적으로 비슷한 대상 사이에 있는 상호 교체성의 관념을 암시하고 있다.  그림의 시적 영역에서 머리와 사과는 서로 비숫한 대안물로서 중첩되어 표현되었다.  <관념> 또는 <삶의 예술>과 같은 다른 여러 그림에서 이 상호교체의 기법이 완성되었는데 그 그림에서는 사과와 태양의 표면이 그림 안에서 머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The fine idea. 1964. oil on canvas.

 


The Great War. 1964. oil on canvas.

 


The Great War. 1964. oil on canvas.

 


The land of miracles. 1964. oil on canvas.

 


The natural graces. 1964. oil on canvas.

 


This is Not an Apple. 1964. oil on canvas.

Le Soir qui Tombe .1964.

르네 마그리트는 평소 우리가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상식·의식을 ‘의심해보게’ 한다. 믿어 의심치 않은 세계가 어느 날 “실은, 당신이 알고 있던 것은 모두 착각이야”라며 뒤통수를 가격한다. 작품 <저무는 해>는 바로 이 의식의 세계가 깨지는 사건, 이로 야기되는 혼란스러움을 표현하고 있다

Le Soir qui Tombe .1964.


저 숲은 그림인가 아니면 그림 밖의 풍경인가? 우리는 어떻게 인식(안)과 세계(밖)를 구분해낼 수 있을까? 우리가 아는 세계는 사실  우리의 지각 너머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Cicero. 1965. oil on canvas. 99.4 X 81.3 cm. Private Collection

 


Good faith. 1965. oil on canvas.


 


Spring. 1965. oil on canvas.

 


The blank signature. 1965. oil on canvas. 65 X 81 cm. 워싱톤 내셔널 갤러리

이 작품의 제작방법은 창문 앞에 놓여진 그림을 표현한 작업들의 또 다른 변이 형태의 작업이다.  두 나무기둥 사이의 나뭇잎들의 부분은 뜻하지 않게 나무의 기둥과 말을 나타내는데말의 궁둥이와 왼쪽 다리는 또한 말이 지나가고 있는 나무들과 공간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르네 마그리트를 수식하는 말은 수없이 많다. 1898년 벨기에에서 태어난 이 초현실주의의 거장에게 이는 당연할 것이다. 벨기에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한 그는 한때 입체주의와 미래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1926년부터 1930년까지 파리에서 생활하면서(그는 이후 줄곧 벨기에에 살았다)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했다. 살바도르 달리, 후안 미로, 폴 엘뤼아르 등 초현실주의 작가들을 만나며 그들과 교유했다. 따라서 마그리트는 보통 초현실주의자로 분류된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구별되는 몇 가지 조형적 차이점이 있다.

우선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대상은 대부분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친근한 사물이라는 점이다. 초현실주의는 꿈과 같은 비이성적 행위의 산물을 표현했기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 이미지가 캔버스에 자주 등장했다. 하지만 마그리트는 일상생활에서 발견하는 대상을 캔버스에 그렸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을 관람하는 이들은 이런 사물을 무심히 지나쳤던 자신의 태도를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되며 일상 속에서 초현실을 경험하게 된다.

마그리트가 초현실주의 내에서 갖는 또 하나의 차이점이라면 이미지와 텍스트 간의 연관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몰두했다는 것이다. 그의 캔버스에는 사물의 이미지와 더불어 텍스트가 함께 등장는데 그는 그 간극에 대한 우리의 인식체계를 뒤흔드는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물론 언어도 일상적인 사물이라고 생각하면 마그리트는 철저히 일상성을 중요시한 작가인 셈이다.

<백지 위임장>도 흔히 볼 수 있는 숲을 배경으로 말을 탄 여인을 그린 작품이다. 그 표현은 매우 사실적이지만 말과 여인, 그리고 숲이 위치한 화면의 깊이가 혼동을 일으킨다. 마그리트는 현실과 상상의 세계인 환상 간의 대립 문제를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사물은 하나의 세계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저 여인의 몸통 위에 나무를 걸쳐 그리거나 그 반대로 표현했을 뿐인데도.

[네이버 지식백과] 백지위임장 [Le blanc-seing]

 


  

The connivance. 1965. oil on canvas.



The fair captive. 1965. oil on canvas.


 


The great table. 1965.  65 X 54 cm. Galerie Isy Brachot, Brussels, Belgium .

 


The idol. 1965.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새는 해변가의 바위와 같은 석화된 성질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이 새는 비행을 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한 가벼움과는 모순되는 세계로 잠입하고 있다.​


 


When the hour strikes. 1965. oil on canvas.

  

Decalcomania. oil on canvas.100 X 81 cm.

 Collection of Dr. Noémi Perelman Mattis and Dr. Daniel C. Mattis

제작 배경​

데칼코마니(Decalcomanie)는 원래 일정한 무늬를 종이에 찍어 다른 표면에 옮겨 붙이는 장식 기법을 일컫는 용어로, 인쇄기에 넣을 수 없는 물체에 무늬를 새기거나 상표를 붙일 때 사용하던 방식이었다. 20세기 중엽에 이르러 독일 태생의 초현실주의 화가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1891-1976)는 자신의 그림에 이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점차 특징적인 하나의 미술 기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데칼코마니에는 과슈(guache) 등을 종이에 바른 후에 캔버스 혹은 다른 종이에 눌렀다 떼는 방식이 사용되었는데, 그를 통해 작가들은 예측하기 어려운 색다른 형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는 이성을 거부하고 무의식을 중시하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입장과 잘 부합하는 것이었다.

초현실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등장한 하나의 운동으로 문학과 미술 등의 분야에서 전개되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세계대전 이전의 합리주의가 결국 비극적인 파괴를 가지고 왔다고 여겼으며 이를 거부했다. 시인이자 비평가인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 1896-1966)은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 함으로써 이 운동의 대표자로 자리잡았다. 그에 따르면 초현실주의는 의식의 영역과 무의식의 영역을 결합하려는 시도이다.

그들에게 무의식의 세계는 이성의 세계처럼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이었으며, 동시에 예술가들에게 수많은 상상력을 제공하는 원천이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무의식적 세계를 작품에 담아내기 위해 여러 방식을 고안했는데, 대표적으로 요철이 있는 재료 위에 종이를 놓고 연필 등으로 문질러 독특한 형태를 담아내는 프로타주(frottage)나, 마음 속의 이미지를 즉흥적으로 기록하는 자동기술법(automatism) 등이 있었다. 데칼코마니 역시 그와 같은 방법 중 하나로, 초현실주의 작가들로 하여금 자유로운 형식의 작품활동이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작품과 표현기법

데칼코마니라는 제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 작품에는 중산모를 쓴 남자의 이미지가 중앙을 중심으로 대칭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데칼코마니 기법을 통해 만든 모습과는 다르게, 이 작품의 대칭적 이미지는 그 형태만 같은 뿐 서로 담고 있는 내용에는 차이를 보인다. 화폭의 오른편에 그려진 바다와 하늘의 모습은, 왼편의 남자가 자신의 몸으로 가리고 있는 부분을 그대로 가져와 그려놓은 듯 보인다. 하지만 정작 남자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바다의 모습보다도, 커튼 가운데 기묘하게 남아있는 바다 풍경은 더 밝고, 선명하게 느껴진다.

<백지위임장(Le Blanc-seing)>이 그러했듯이 이 작품 역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물에 대한 개념에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그림을 보는 이들은 캔버스 속 남자와 커튼, 바다와 하늘 중 어느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며, 어떤 것이 다른 것들보다 앞에 놓여있는지 구분할 수 없다. 결국 관람자는 자연스럽게 그림이 가지고 있는 ‘모사’라는 속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며, 이는 일상적인 경험에서는 얻기 힘든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 낸다. 그림 속 등장하는 중산모를 쓴 남성의 이미지는 1930년대부터 꾸준히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의 작품에 등장하는 것으로, <교장(Le Maitre d’ecole)>, <사람의 아들(Le Fils de l’Homme)>, <신뢰(Good Faith)> 등에서 역시 나타난다.

[네이버 지식백과] 데칼코마니 [Decalcomanie]

  

Every day. 1966. oil on canvas.

  

The endearing truth. 1966. oil on canvas. 130 X 89 cm.

이미 그려진 그림 위에 또 다시 그림을 표현하고 있는 다른 방식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굳어진 시각의 성격에 대한 계속되는 작가의 고찰을 반영한다.

 


The happy donor. 1966. oil on canvas.

 


The king's museum. 1966. oil on canvas.

 


The Pilgrim. 1966. oil on canvas.

 


The promise. 1966 . oil on canvas.

 


The treachery of images (This is not a pipe). 1966. oil on canvas.

 


The age of enlightenment. 1967. oil on canvas.

 


The two mysteries. 1966. oil on canvas. 80 X 65 cm. Private Collection



진리의 탐구,  1966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는 전경의 종과 물고기의 신비로운 대립과 병행하여

빛과 어두움에 의한 실내와 실외의 대립이 이 작품속에 나타나고 있다.


  

The beautiful relations. 1967. 


세 개의 전이된 요소들은 하늘에 감추어진 미묘한 우주의 자취인 듯,  우의적인 새로운 의미로 융합되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얼굴과 잘 맞지 않는 기구라는 사물은 안구라는 새로운 대상의의미로 용해되어 있는데 이는 하나의 사물이 다른 이름으로 대치되는 마그리트의 창작 원칙 중 하나이다.


  

The blank page. 1967. Musée Royaux des Beaux-Arts, Brussels, Belgium




The Empire of Lights (unfinished). 1967. oil on canvas. 50.3 x 45 cm. Private Collection


마그리트는 그가 죽을 때까지 이 연작에 완전히 사로잡혀 몰두하였다.그렇게 때문에 이 작업을 완전히 끝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 작품은 작가가 죽기 얼마 전에 완성한 것으로 후시 작품의 한 예이다.



the art of living. 1967.



마지막 절규,  1967


일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서로 연관된 오브제의 중복은 감추어진 비밀의 급박성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드러내는 직유법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The Labours of Alexander. sculpture .  Private Collection


 


The natural graces.   Date unknown.  sculpture. Private Collection




A little of the bandit's soul.  Date unknown.  sculpture.  Patrimoine culturel de la Communauté français de Belgique, Brussels, Belgium


 


A little of the bandit's soul.


  

Collage.Date unknown. collage,  pencil, ink.


  

The domain of Arnheim


 


Souvenir from travels


  

The domain of Arnheim.


 


The therapeu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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